1 핸드폰 요금제 아닙니다
가까운 미래의 일본, 급격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플랜 75'라는 충격적인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75세 이상 노인들에게 안락사를 권유하고, 참여자에게는 100만 엔의 장려금과 호화로운 '마지막 여행'을 제공하는 제도다.
78세의 미치(바이쇼 치에코)는 호텔 청소부로 열심히 일하던 중, 동로 노인 직원이 쓰러지는 사고 이후 해고된다. 호텔 측은 "노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손님들이 슬퍼한다"는 이유를 댄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던 미치는 결국 한밤중 도로 안전요원이라는 춥고 외로운 일을 하게 된다.
한편 플랜 75 영업사원인 히로무(이소무라 하야토)는 거리에서 노인들의 플랜 75 가입을 설득하는 일을 한다. 어느 날 20년 만에 재회한 삼촌 유키오가 자신의 75번째 생일에 프로그램 신청을 하면서, 그의 신념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마리아(스테파니 아리안)는 딸의 심장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플랜 75 시설에서 시신을 처리한다. 그녀는 동료가 시신의 귀중품을 훔치는 것을 목격하고 윤리적 갈등에 빠진다.
미치의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 플랜 75를 선택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게 낫다"는 논리로 자발적 죽음을 선택한다. 정부는 이미 프로그램을 65세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 중이며, 100억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홍보하고 있다.
영화는 밝은 홍보 영상과 친절한 상담원의 모습 뒤에 숨겨진 비인간성을 차갑게 드러내며, 현대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 문제와 생명의 가치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2 영화가 던지는 생명윤리의 질문
영화 플랜 75는 고령화 사회의 해법으로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를 권유하는 가상의 국가 프로그램을 통해 생명윤리 문제를 조명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안락사 논쟁을 넘어,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상품화하는지 날카롭게 비판한다.
영화에서 국가는 노인에게 100만 엔의 장려금과 호화로운 '마지막 여행'을 생명의 값으로 내민다. 주인공 미치는 국가가 내민 카드를 받아들였다. 그 선택은 스스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미치 본인의 책임이 크지만, 생명을 돈과 여행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상 자체가 잔인하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플랜 75의 가입 권유 대상이 빈곤층 노인이라는 점에서 돈이 없는 노인은 죽는 편이 낫다는 메시지를 국가가 앞장서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영화가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만 해도 노인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런데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일자리는 없다.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에 은퇴하고 일자리가 없어 무료급식소를 전전하는 노인들이 넘친다. 국가가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빨리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뿐인가? 노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그들이 삶 속에서 터득한 지혜는 젊은이들이 아무리 흉내 내려고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아무리 똑똑한 자식이라도 정말 힘들 때는 배운 것 없는 부모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노인의 가치가 경제논리로만 판단받아야 하는 현실이 끔찍하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세상이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라볼 때 더 마음이 아프다. 세상은 생명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주권이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낙태수술로 생명을 없애고, 결혼을 하고도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자녀계획을 가지지 않는다. 생명의 시작을 원천봉쇄함도 모자라 생명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살하는 사람을 비롯해 플랜 75를 권유하는 사람, 가입하는 사람도 그들 중 하나다.
주목할 사실은 노인을 죽음으로 모는 진정한 원인이 돈이 아니라 관계라는 사실이다. 영화 내내 어두운 표정을 짓던 미치가 웃음을 지었던 장면들은 모두 영업사원 히로무와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나왔다. 미치는 히로무와 더 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지만 비즈니스 관계였던 둘의 관계 증진은 한계가 있었다. 문득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성인이 돼서 용돈을 드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당신은 늘 돌아서는 나의 등에 대고 말했다.
"돈 안 줘도 되니까 좀 더 있다 가라"
생각해 보면 사람이 가장 갈급해하는 부분도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도 관계다. 나 또한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받는 부분은 관계문제다. 일이야 어떻게든 처리하면 되고 누가 하든 좀 더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라지만, 관계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애쓴다고 반드시 좋아지는 법도 없다. 주위에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을 봐도 열에 아홉은 일 때문이 아닌 관계 때문에 사직을 택한다.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반면 그 복잡함에서 벗어난 노인들은 관계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인생 참 어렵다.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75세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사회에서 잉여 취급받고, 죽음을 생각하는 노인이 되긴 싫다. 세상이 나를 수익성으로 판단하겠다면 적어도 내 밥값은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외로움이 나를 죽음으로 몰지 않도록 좋은 사람들을 옆에 두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